더워지는 날씨에 새록새록 떠오르는 작년 엄마와의 여름휴가.
엄마는 내가 태어나기 전 신혼여행 이후로는 제주도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셨다.
코로나 기간에 혼자 갔던 제주도 여행에서 완벽한 자연과, 음식, 휴양이 있는 제주도를 사전답사(?) 한 후에, 엄마에게 최고의 여름을 선물해 주고싶어, 3박 4일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프로 여행러로서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뚜벅이로 다녀도 하나도 불편함이 없는 해변과, 까페와, 맛집이 모두있는 동네!
2면이 오션뷰로 되어있는 숙소. 웨이팅 하지 않도록 미리 예약해둔 식당들.
엄마는 내덕분에 엄청 편안한 시간을 보내실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낯선장소에 온 아이처럼 중간중간 움츠러든 모습을 보였다.
아직 여행이 이틀 더 남았는데도, 내일 몇시 비행기로 집에 가는거냐고 물으시고,
우리가 지내는 해변이름이 뭐냐고 한 10번은 물으신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못된 생각이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다 준비했는데.
잘 즐기질 못하는것 같은 엄마를 보니 좀 짜증이났다.
그러다가도 바다에 가면 어린아이처럼 정말 행복하게 노시는걸 볼 땐마음이 여름 제주도처럼 뜨끈해졌다.
너무나도 아쉬운 여행 마지막날,
우리는 제주도 스타벅스에서만 파는 음료와 파니니를 먹으며, 협재 해변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엄마가 갑자기,
"여기가 경포대던가? "
라고 하셨다.
고향이 부산인 엄마가.. 여기가 경포대냐니…
이 여행을 준비했던 몇주간의 나의 노력, 우리가 이 해변에서 보낸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내가 바로 다그치고, 이곳이 어디라는 답변을 다시 듣고는 요즘 자주 그러시던 것처럼 '아참참참. 맞다 맞다'하고멋쩍게 웃으셨다.
하지만 끝끝내 '협재'해변의 이름은 생각해내지 못하셨다.
그때 이후로 한동안 부쩍 두려워졌다.
우리가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어떤 시간을 보냈었는지. 그 모든 걸 다 잊게 만드는 병.
야속하지만, 그 누구도 탓할 수 없고, 지켜볼 수밖에없는 병.
엄마는 왜 인생이 시작된다는 환갑에 이 병에 걸리셔서 내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하나,
하늘도, 엄마도 다 야속하고 미운 시간들이었다.
휴가에서 다녀온 다음날 우리는 이대서울병원에 가서 휴가 전 진행했던 엄마의 아밀로이드 PET 촬영 결과를 들었다.
아밀로이드 물질이 나타난다면 그건 치매로 진행될 확률이 거의 80% 이상,
치매초기로 간주하고 선제적으로 약을 복용하고,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양성으로 나오셨어요".
예상했던 결과이니 이후 어떻게 치료계획을 세우면 좋을지 담담하게 귀를 쫑긋 세워 집중하려고 했지만,
눈에서는 눈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진료실에서 나와 우리는 당이 훅 떨어진 걸 느끼고는 병원 카페에 갔다.
카페에서 빵을 먹는 민머리의 어린아이와 엄마가 옆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아이는 아파 보이지만 신나게 인형놀이를하며 웃고 있는데, 아이 엄마의 표정은 한없이 어둡기만 했다.
아이 엄마를 에워싸고 있는 어두움은 나의 피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침통함, 죄책감, 미안함, 괴로움이었다.
아픈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마음..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
20대 후반 3년 동안 위염 때문에 고생하던 때가생각났다.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니 정말 앙상하고 마르게 되었는데, 엄마가 내 몸보신을 위해 매일 닭백숙을 해 주실 때가 있었다.
어느 날 회사에 다녀와 기진맥진하며 소파에 누워 있다가 분주하게 밥상을 차리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본 적 있다.
압력밥솥 뚜껑을 힘차게 열어, 뜨거운 솥에서 닭을 꺼내는 엄마를 보는데, 너무 강인한 여성 같았다.
그때
'나는 몇 살까지 엄마의 보살핌을 받게 되는 걸까. 두 번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엄마에게 받은 은혜는 절대 다 갚지 못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내 옆에 내가 없으면 여행도, 병원도 갈 수 없게 된 엄마.
'그래 조금은 갚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마어마한 감사의 빚을 이생에서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날 힘들게 하던 서러운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이제 시작이라고, 마음 단단히 먹으라는 주변의 조언은 많이 받았지만, 오히려 나를 더욱 마음 아프게 했던 것 같다.
효도가 결국 나를 위함이라는 것을 깨달으니 내 안의 심지가 단단하게 굳어지는 느낌이다.
엄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많을 때, 귀찮음 보다는 감사함으로 잊지 않으려고 쓰는 글.
엄마의 일상을 담은 인스타를 방문하시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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